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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4 [펌] 바츠해방전쟁



다음 엠팍에서 퍼옴.
리니지에서 있었던 민중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한겨레 신문에서 토막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무척 인상깊었는데 하필 이인화 교수가 이를 정리한 글을 썼었나보다.
역사상의 여러 민중봉기나 프랑스혁명이 인터넷에서 재현되는 느낌이란...
혁명의 성공과 실패과 현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찬찬히 읽어보면 오늘의 우리가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짠해지는 것이 있다.


[펌] [강추] 바츠 해방 전쟁 - 또다른 역사, 하나의 대 서사시...
http://cafe.daum.net/mlbpark/41pV/3809주소 복사

소설가인 이화여대 교수 이인화씨가 쓴 글의 일부분입니다.
리니지 2의 제 1서버 바츠서버에서 있었던 바츠해방전쟁에 관한 이야기 인데요. 바츠해방전쟁은 그 자체로 장엄한 한편의 대 서사시이자 인류 역사의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드라마네요.

글이 매우 길긴 하지만 한 숨에 쭉 읽힐 정도로 이인화씨의 글이 재미와 격조를 갖추고 있고 그 속의 바츠해방전쟁이 안겨주는 임팩트는 매우 감명깊습니다.

꼭 읽어보세요...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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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 세계에서 일어난 여러 스토리 가운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제1서버(바츠 서버)에서 2004년 6월에 발발한 ‘바츠 해방전쟁’이다. ‘리니지2’에는 32개의 서버가 있다. 이 가운데 바츠 서버는 역사가 가장 오랜 서버로, 사용자들이 개발사에 대해 항의 시위를 하는,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 서버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에서 발생한 숱한 스토리 가운데 현실세계의 일간지에 보도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세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리니지2’의 세계는 레벨에 따른 계층적 차별성이 뚜렷하게 제시되는, 철저한 계층 사회다. 레벨에 따라 입는 옷과 쓰는 무기 등 아이템이 다르며 출입할 수 있는 지역도 다르다.

‘리니지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에 비유될 만한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 계층은 2003년 11월25일 현재 전체 ‘리니지2’ 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된,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레벨이 높아져 세력을 형성한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과 음습한 동굴, 무너진 산채에서 혈맹 모임을 연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현상을 일으켜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쟁혈맹의 혈맹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55레벨 정도가 돼야 하며 DK혈맹과 같은 이름 있는 혈맹에 가입하려면 최소 61레벨에서 65레벨이 돼야 한다. 따라서 혈맹전쟁은 그만큼 레벨이 높은 전쟁혈맹 사람들만의 관심사다.

이처럼 계급구도가 뚜렷한 ‘리니지2’ 세계에서 민중이 대대적으로 봉기한 2004년 6월의 바츠 해방전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바츠 해방전쟁은 위협하면 굴복하고 때리면 죽는 민중이 권력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중의 고조된 열광은 시스템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승리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승리는 크라토스(Kratos), 즉 거칠고 원초적인 물리력이 지배하던 세계에 에토스(Ethos), 즉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 이념을 출현시켰다. 이후의 ‘리니지2’ 세계에서는 어떤 권력도 이 같은 에토스의 전제 없이는 피지배계층의 복종 내지 권력에 대한 묵인을 얻어낼 수 없다는 진리가 확인됐다.

지배혈맹의 압제와 세금인상

이러한 바츠 해방전쟁의 발발에는 두 가지 경제·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요인은 10%에서 15%로 바뀐 2004년 2월16일의 세율 인상이었다. 세율이란 성을 차지한 지배혈맹과 개발회사가 상점에서 거래되는 모든 물품대금의 일정 비율을 나누어 갖는 것을 말한다. 높은 레벨의 사용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다른 사용자와 직거래하므로 세율인상에 구애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상점에서 무기와 옷, 마법방어를 위한 장신구, 각종 물약과 마법서를 사야 하는 40레벨 이하 사용자에게 세율 인상은 생계를 위협하는 변화였고, 이러한 불만은 세금을 징수하는 지배혈맹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해방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둘째 요인은 극에 달한 정치적 압제였다. 바츠 서버에는 1000개가 넘는 혈맹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쟁혈’이라는 전쟁혈맹과 ‘친목혈’이라는 사교혈맹의 경계는 매우 유동적이다. 쟁혈 내부에도 사교 활동이 있고 친목혈도 다른 혈맹에 전쟁을 선포하면 전쟁혈이 되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리니지2’ 세계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전쟁혈이다.

전쟁혈은 다른 혈맹보다 더 레벨이 높고, 더 오랜 시간 활발히 접속하며, 더 PvP 전투(플레이어간 대인전)에 능한 혈맹원을 영입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이러한 세력 경쟁에서 승리한 혈맹이 지배혈맹이 된다. 때로 최강의 조직을 구축한 거대 지배혈맹의 군주는 다른 유력 혈맹과 단합해 공포와 전율로 얼룩진 철권통치를 구현할 수도 있다. 바츠 서버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지배혈맹의 철권통치였다.

2003년 7월6일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 직후부터 바츠 서버를 지배해온 것은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일명 DK) 혈맹이었다. 이미 ‘리니지1’에서부터 활동해 조직을 정비한 상태에서 ‘리니지2’로 넘어온 DK혈맹은 가장 먼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혈맹원을 규합한다. 그 뒤 DK혈맹은 ‘리니지2’의 신화적 고대 세계에서 집단으로 구현되는 인간 의지의 강렬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냥터 통제로 이윤 독점

이들은 ‘통제령’을 통해 좋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사냥터를 봉쇄해 다른 사용자의 출입을 막았다. 나아가 ‘척살령’을 발동해 피의 독재를 전개하면서 자신이 독점한 사냥터에서 ‘오토’라고 부르는 자동 매크로 프로그램 사냥을 통해 24시간 아덴(리니지 세계의 통화)을 벌어들였다. 또 그때그때 유력한 다른 혈맹과 적절히 제휴함으로써 대항 혈맹들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분쇄했다.

게임 사냥터 통제는 ‘리니지1’에서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리니지1’에서 사냥터 통제를 통한 이윤 독점을 학습한 DK혈맹은 일찍부터 ‘통제’와 ‘오토’를 은밀히 행해왔다. 그러나 2004년 3월 거대 3혈맹 단결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확인한 DK혈맹은 아예 ‘통제’와 ‘오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여기에 반항하는 사용자들을 살해하는 ‘척살’을 확대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횡포, 아무런 가치 이념도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물리력의 발현은 일반 민중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했다. 이것이 세금 인상에 따른 민중계층의 광범위한 불만과 결합하면서 마침내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바츠 해방전쟁의 서전(序戰)은 2004년 5월9일 붉은혁명혈맹이 DK혈맹 군대가 방어하는 기란성을 점령하고 “세율 0%”를 선언한 것. 이 기적 같은 승리는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층 민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단독으로 DK혈맹에 전쟁을 선포했다가 무참하게 진압당한 바 있던 더킹혈맹, 순수한 마법사들만의 혈맹인 해리포터혈맹, 수원성혈맹, 하드락혈맹, 리벤지혈맹 등 지배혈맹은 아니지만 상당한 세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혈맹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이 ‘바츠동맹군’을 결성하고 ‘반3혈(反三血)’의 기치를 높이 들자 민중은 하나 둘 그 옆에 모여들어 자발적으로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 사용자들은 DK혈맹을 중심으로 한 3혈 연합군의 ‘화살받이’가 돼 무수히 죽어갔다. 민중 계층이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방안은 인해전술이다. 버프(공격 및 방어 능력의 일시적 증강)와 스킬의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일방적으로 상대를 도륙하는 DK혈맹 전사의 모습과 수십명이 낙엽처럼 죽어가는 일반 사용자의 모습은 고대적 파토스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자유의 깃발 아래 죽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의 정의감을 자극했다. 반3혈측의 절박한 호소문이 인터넷에 오르자 비슷한 폭압에 시달리던 다른 서버의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버리고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바츠 서버로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이들은 바츠 서버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에 이들의 캐릭터는 형편없는 저레벨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혁명의 상퀼로드(긴바지를 입은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불렀다.

다른 서버 사용자들이 참전해 바츠 서버가 만성적인 접속 장애에 시달리던 이 시기에 많은 호소문이 나타났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바츠 동맹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명이 모여서 DK연합에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큰 타격을 줄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가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 겸댕이대왕, <호소문 - 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2004. 6.16.)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틀 정도 육성한 레벨10 전후의 캐릭터다. 뼈단검을 든 이들의 공격력은 5~10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대미지)다. 이들이 상대하는 DK혈맹원은 6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고수로 이들의 공격력은 한번 시전시 1000~1300포인트에 이른다. 공격 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이는 어떤 전술로도 상대가 될 수 없는 차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은 고립된 개인의 상상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뛰어넘는 집합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출현시킨다. 이것은 마치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낮은 차원의 지능을 갖지만 더듬이를 병렬로 연결한 그 집단의 지능은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최적의 행위와 최적의 해답을 찾아내는 이치와 같다.

내복단 구성원이 찾아낸 최적의 전술은 DK혈맹 전투부대의 측후방으로 돌아가 가장 취약한 힐러(치유술사)를 ‘모탈 블로’라는 스킬로 100여 명이 동시에 찌르는 방법이었다. 내복단 한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적의 힐러에게 대략 40의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100명의 화력은 40×100=4000 포인트에 이르며 한꺼번에 4000포인트의 체력이 감소한 힐러는 손쓸 겨를도 없이 전사한다. 이렇게 힐러가 전사하면 버프와 힐(대미지를 입은 체력의 회복)을 받지 못한 DK 전투부대는 중심을 잃고 그 뒤에 달려드는 내복단에 의해 각개격파돼 죽어갔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리니지2’의 채팅창은 띄어쓰기를 포함해 24자를 치면 꽉 찬다. 또 현실적으로 동일한 작전 행동을 할 수 있는 단위는 9명에 불과하다. 내복단은 이런 제한된 의사소통 환경에서 제한된 수단을 이용해 수백명, 수천명에게 작전 명령을 내리고 반응하면서 현실의 전투 군단처럼 신속하게 기동했다. 그러면서 적에 대한 기만, 공포감 조성, 일사불란한 이동과 과감한 종심돌격, 때로는 독창적인 전술행동을 실현했다. 이러한 기동전의 놀라운 방식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환경의 집단 지능이 얼마나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준 실례다.

이러한 집단 지능은 단순히 전투에 그치지 않았다. 피에르 레비(Pierre Levy)의 지적처럼 집단 지능은 개체적 차원의 상황을 연계해 더욱 고귀하고 상승적인 가치를 생산한다. 이 시기 ‘리니지2’ 사용자의 가슴에 발생한 의분과 정열, 정의를 향한 열망은 단순한 놀이로서의 게임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로드한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이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캐릭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이란 걸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임이지만 게임도 하나의 가상현실이고 그곳에도 정의가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트릭스 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매트릭스는 네오라는 영웅에 열광하는 것이지만 리니지2는 자신의 캐릭이 리니지2라는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 저는 ‘리니지1’에서 아주 작은 혈의 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소한 문제로 당시 거대 혈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했지만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쪽 군주에게 정식 혈전을 요청했습니다. 질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학살당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싸워보자는 혈원들의 패기와 용기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비굴해지기 싫었습니다. 전 묵묵히, 제 장비를 긴급처분해 혈원들에게 물약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가보았지요. 일방적인 학살이었습니다. 하지만 혈원들은 단 한 명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싸웠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로하더군요.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저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2004. 6.17. ‘리니지2’ 게임포 게시판 호소문의 세 번째 댓글)


내복단의 활약

이처럼 내복단은 ‘리니지2’라는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바츠 해방전쟁에서 내복단이 만들어낸 에토스, 윤리적 가치 이념은 온라인 게임과 같은 현실의 가상현실화가 더 높은 단계의 인간화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가상(Virtuality)은 단순히 ‘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형상’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눈앞에 구체적으로 현시한 것이다.

2004년 6월의 대접전 기간에 DK혈맹은 어떤 여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했다. 내복단은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바츠 서버로 밀려들었으며 5개 성을 중심으로 주요 전쟁터는 양측의 시체로 뒤덮였다.

7월에 접어들자 바츠동맹군(혁명군)의 전열은 더욱 강고해졌다. 붉은혁명 혈맹과 리벤지혈맹을 중심으로 32개 전쟁 혈맹이 ‘바츠 해방’의 깃발 아래 집결했고, 무수한 내복단이 이들의 외곽을 수호했다. DK연합군은 야전에서 패퇴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강철 같은 DK연합군 5개 아성 가운데 최초로 오랜성이 함락됐다. 이 과정에서 전 서버 최강의 전사인 DK연합군의 아키러스가 순수한 저레벨의 내복단과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

급기야 6월28일 3혈 동맹의 주축이자 DK혈맹 다음의 거대 혈맹이던 제네시스혈맹이 사냥터에서 벌어진 사소한 충돌을 빌미로 DK혈맹과 결별하고 바츠 혁명군에 투항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당황한 DK혈맹은 급히 정(情) 혈맹과 위너스혈맹을 회유해 4혈 동맹을 결성했지만 지배연합의 전열은 크게 흔들린 뒤였다.

그리하여 7월17일 바츠 해방전쟁의 분수령이 된 아덴 공성전이 벌어졌다. 이 시기 바츠동맹군은 40개 혈맹에 이르렀으며 오랜성을 점령한 상태였다. 리니지 월드의 중북부에 자리잡은 오랜성은 비록 궁벽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60레벨의 엘프족 전사가 윈드 서커의 버프를 받고 달리면 10분 안에 사냥꾼 마을을 거쳐 수도 아덴성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시 바츠동맹군은 7인의 지휘관이 이끄는 엉성한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지휘관들은 오랜성 성주이자 리벤지 혈맹의 총군주 ‘나리타’, 붉은혁명혈맹의 총군주 ‘눈물을 감추고’, 해리포터 혈맹의 총군주 ‘박셩만만쉐’, 더킹혈맹의 총군주 ‘혜원낭자’, 수원성혈맹의 총군주 ‘칼데스마’, 하드락혈맹의 총군주 ‘엘븐백기사’, 그리고 가장 나중에 합류해 바츠동맹군 사이에 묘한 긴장을 감돌게 한 제네시스혈맹의 총군주 ‘칼리츠버그’다.



'리니지2'를 개발한 온라인 게임 업체 엔씨소프트 직원들



혁명이 태양처럼 빛나던 날

이토록 많은 혈맹이 집결했지만 바츠동맹군은 아직도 수적으로 DK연합군에 비해 열세였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바츠 서버의 독특한 정치적 정세에서 비롯된다. 바츠 해방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현실적으로 DK연합에 가입하거나 양해를 얻지 않고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52레벨 이상 육성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52 이상의 레벨 업을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사냥터를 DK연합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파편화된 사용자들은 물질적 안락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흔히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그 결과 전쟁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고레벨 사용자들은 이 시기까지도 DK연합에 속해 있었다.

이렇듯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DK연합군 전사들은 DK혈맹의 총군주이자 지배4혈의 총군인 ‘shadow여솔’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shadow여솔’ 밑에는 혈맹전쟁 참전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신의 기사단혈맹의 총군주 ‘지존군주’, 위너스혈맹의 총군주 ‘푸른 전사’, 정혈맹의 총군주 ‘만월의 폭군’이 그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츠동맹군이 대승을 거둔 아덴 공성전은 기만전술의 승리였다. 그토록 많은 내복단이 참전했음에도 바츠동맹군은 전투가 시작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실제 전력에서 DK연합군보다 우위에 있지 못했다. 불리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이 전투에서 바츠동맹군 수뇌부는 기만전술을 선택했다.

기만전술이란 위장과 은폐의 기획 의도를 가진 군사행동이다. 전쟁에서 일정 기간 적을 속이기 위해 대병력을 양동작전에 투입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작전은 없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는 “기만전술이 계획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지휘관은 책략을 동원하기보다 쌍방 전투력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오로지 필연성만을 고려하는 ‘엄숙한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수적 열세를 기만전술로 극복

이런 관점에서 바츠동맹군의 승리는 기적이었다. 수많은 내복단 가운데 첩자가 있어서 채팅창의 귓속말에 단 한 줄만 입력했다면 발각될 수 있었을 기만전술이 두 번이나 성공했다. 서로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내복단 동지들은 현실 공간에서보다 더 철저한 도덕성을 보여주었다.

바츠동맹군의 기만전술은 공성 등록부터 시작됐다. ‘리니지2’의 게임 규칙에 따르면 양군은 공성 시작 24시간 전에 공격할 성으로 가서 수성 등록과 공성전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 마감 10분 전. 제네시스혈맹을 제외한 바츠동맹의 모든 혈맹은 오랜성에 수성 등록을 했으며 제네시스혈맹만이 아덴성에 공성 등록 절차를 밟고 있었다. 바츠동맹군은 누가 봐도 DK연합군의 탈환전에 대비해 오랜성 방어에 전념한 것처럼 보였다.

등록 마감 8분 전. 제네시스혈맹마저 공성 등록을 취소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에 DK연합군은 아덴성 수성 등록을 취소하고 오랜성으로 이동하는 한편 바츠동맹군의 위치를 맹렬하게 찾았다. 이 시간 사라진 제네시스혈맹과 바츠동맹군 본대는 사냥꾼 마을 근처에 매복하고 있다가 DK연합군의 이동 정보를 받자 즉시 아덴성 마을로 달려갔다.

등록 마감 3분 전 바츠동맹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DK연합군은 할 수 없이 오랜성에 공성 신청을 했다. 같은 시간 바츠동맹군은 아덴 공성에 26개 혈맹이 신청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아덴성에 수성 등록한 것은 DK의 1개 라인혈맹에 불과했다. 양동작전의 기만전술로 바츠동맹군은 공성에 참여할 수 있는 병력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7월17일 오후 비교적 공성이 쉬울 것이라던 바츠동맹군의 예상은 빗나갔다. DK연합군은 오후 7시부터 아덴성 주위에 끝없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엄청난 숫자로 대오를 정비하고 전략적 요충지마다 바츠동맹군의 진격을 봉쇄하기 위한 요격진지를 구축했다.

숙련된 DK연합군은 성 입구 중간에 칼과 단검, 창을 든 격수 부대를 배치하고 양 옆으로 넓게 궁수 부대를 포진시킨 학익진(鶴翼陣)을 구축했다. 이것은 성문으로 돌진하는 바츠동맹군을 일점사(一點射)로 저지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진법이었다.

8시. 결전이 시작되자 최전선에 DK연합군의 맹장 아키러스가 이끄는 ‘전 서버 최강의 전투 부대’ 아키러스 파티(9명)가 나타났다. 아키러스 파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츠동맹군 3개 파티를 전멸시키고 바츠동맹군의 최전선 진지를 파괴했다. 전력의 우열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다. 오직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만이 바츠동맹군을 버티게 하고 있었다.

9시. 무수한 희생에도 바츠동맹군은 진지조차 세우지 못했다. 공성군측이 1시간이 지나도 진지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전황이다. 공성군측이 전사했을 때 진지가 있으면 그 진지에서 부활할 수 있지만 진지가 없으면 두 번째로 먼 마을에서 부활해 10여 분을 달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츠동맹군의 두 번째 기만전술이 시작됐다.

인간 바리케이드로 연합군 회군 저지

9시10분. 바츠동맹군은 부서진 진지를 뒤로하고 산지사방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DK연합군의 눈에 이와 같은 패주는 자연스럽게 보였다. 상대는 총사령관조차 정해지지 않은,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혈맹들의 엉성한 결합체였고 내복만 달랑 걸친 오합지졸의 군대였다. DK연합군의 맹공에 1시간 동안 버틴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9시20분. 승기를 잡은 DK연합군은 진군했다. 패주했지만 적의 주력이 완전히 분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군 수뇌부는 결정적인 승리를 획득하기 위해 아덴성 주변의 전장을 떠나 오랜성으로 추격전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대비해 CC지역의 레드군단 궁수부대와 DD지역의 화이트군단 궁수부대를 잔류시켰다.

그러나 이때 바츠동맹군은 패주한 것이 아니었다. 패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만전술을 폈던 것이다. 바츠동맹군은 거의 흩어지지 않고 전장 외곽에 집결해 매복했다.

오랜성으로 진군한 DK연합의 대군은 리벤지혈맹을 비롯한 소부대만이 지키고 있는 오랜성을 맹공했다. 외성문 바깥쪽에 공성 진지를 구축하고 공성골렘(성문을 부수기 위한 공성무기)을 뽑아 눈 깜짝할 사이에 외성문을 부수어버렸다. 이 공세는 외성문 안쪽에 압살롬 진형(원형 일점사 진형)을 구축하고 있던 리벤지 혈맹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리벤지혈맹은 총군주 ‘나리타’와 라인군주 ‘야적’ ‘어시장’ 등 지휘부가 직접 나서서 뚫린 외성문 안쪽에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방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DK연합군의 공격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아덴성의 급전이 오랜성 공성부대로 날아든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아덴성의 주전장에서는 DK연합군의 주전력이 이동하자 바츠동맹군이 즉각 다시 기동했다. 먼저 칼리츠버그의 진두지휘 아래 아수라처럼 분전한 제네시스혈맹이 DD지역의 화이트 군단 궁수부대를 격파했다. 제네시스혈맹은 한 라인을 보내 @지역에 진지를 구축하는 한편 나머지 병력으로 전장을 가로질러 CC지역 레드군단 궁수부대의 배후를 엄습했다. 레드군단 궁수부대는 앞뒤로 포위돼 전멸했다.

곧이어 바츠동맹군은 공성골렘을 소환했고 프로핏의 버프를 모두 받은 공성골렘은 불과 몇 분 만에 외성문을 파괴하고 내성문마저 부수어버렸다. 아덴성으로 쇄도한 바츠동맹군은 망루와 성벽을 지키던 위저드(공격수 마법사) 부대를 격파하고 내성으로 뛰어들었다. 내성을 지키던 DK 골드라인 혈맹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원 사살됐다. 이 전투에서 지배4혈의 총군 shadow여솔도 전사했다.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DK연합군은 다급한 나머지 오랜성에서 아덴성 마을로 텔레포트해 전장으로 직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한 것은 내복단의 결사적인 저항이었다. 인간 바리케이드를 형성한 내복단은 화살받이가 돼 죽으면서 자신들의 시체로 마을 입구를 겹겹이 막았다. 시체 때문에 걷기조차 어려워진 DK연합군은 바츠동맹군 궁수 부대와 위저드 부대의 집중 포화를 받고 쓰러져갔다. DK연합군이 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이 제네시스혈맹의 칼리츠버그 총군주가 각인실에서 성의 점령을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PC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사용자들이 목격됐고 게임 안에서는 아덴성의 메인 홀에서 내복단들이 춤을 추었다. 이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됐다. 이 날의 혁명은 모든 리니지 월드에 태양처럼 빛났다.

아덴 공성전은 바츠 해방전쟁의 분수령이었다. ‘리니지2’ 월드의 정치적 중심지인 아덴성을 점령한 것을 기점으로 바츠동맹군은 빠른 속도로 분열하며 타락해갔다.

분열의 씨앗은 전승(戰勝)의 과실을 누가 가질 것인가였다. 예컨대 아덴 공성전의 성공으로 리벤지혈맹은 오랜성을 차지했고, 제네시스혈맹은 아덴성을 소유하게 됐다. 그런데 처음부터 바츠동맹군의 선봉을 맡아 많은 희생을 치른 붉은혁명혈맹은 얻은 것이 없었다. 아덴성 각인을 함으로써 아덴성을 소유하게 된 제네시스혈맹은 바츠동맹군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3주 전까지 지배연합군의 일원이었다.

제네시스혈맹은 제네시스혈맹대로 가장 병력이 많은 만큼 고생은 자기네가 다 했는데 이전에 지배연합군에 속해 있었다는 묘한 처지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억울해 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납득해도 심정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데 따른 불만이 각 혈맹마다 쌓이기 시작했다.

혁명군의 분열과 역전

DK연합군이 아덴성에 이어 기란성마저 빼앗기고 오만의 탑 9층으로 퇴각하자 승리의 전리품을 둘러싼 각 혈맹간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무렵 바츠동맹군 소속의 혈맹들이 약칭 ‘용던’이라는 안타라스의 동굴에서 부분적인 통제와 오토 행위를 한다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각 혈맹의 총군주들은 용던이라는 사냥터에 독점구역을 확보함으로써 성의 소유를 둘러싼 혈맹원들의 불만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바츠동맹군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애초에 바츠동맹군이 외친 ‘정의와 자유’의 구호는 매우 지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의 정의는 일반 사용자를 죽이고 오토 프로그램을 돌리며 게임의 룰을 일탈한 지배혈맹에 대한 정의였다. 또 이때의 자유는 어떤 사냥터든지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고 누구나 사냥할 수 있다는 의미의 자유였다.

그런 대의명분을 내세운 바츠동맹군이 지배혈맹과 똑같은 통제와 오토, 척살을 행했다. 그것은 그들을 지지해온 일반 사용자들의 신뢰를 뿌리째 배신하는 것이었다. 바츠동맹군의 전쟁 혈맹들은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고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아직 완전히 섬멸되지 않은 적 앞에서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았다. 수세에 몰려 있던 DK연합군은 이때 새로 패치(patch)된 ‘오만의 탑’에 숨어 은인자중 힘을 기르고 있었다.

적의 무서운 잠재력을 외면한 바츠동맹군은 승리에 도취해 사분오열했다. 붉은혁명혈맹은 어제까지 동지였던 리벤지혈맹과 전쟁에 돌입했으며 곧이어 제네시스혈맹과도 전면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수적으로 열세에 몰린 붉은혁명혈맹은 과거의 주적이던 DK연합군과 제휴함으로써 바츠 해방에 참전한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4혈도 나쁘지만 반4혈도 나쁘다”는 공감대가 바츠 서버에 유포되면서 아덴 공성전까지 일사불란하게 유지된 단합은 무너졌다. 내복단 역시 내복단을 빙자한 강도들, 즉 ‘제조’들이 등장하면서 도덕성을 믿을 수 없는 경계와 의혹의 대상이 됐다.

끝나지 않은 바츠 해방전쟁

바츠동맹군의 타락과 분열로 전세는 역전됐다. DK연합군은 조금씩 조금씩 빼앗긴 성들을 모두 탈환했으며 혁명군의 공성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그리하여 해가 바뀐 2005년 1월27일 DK혈맹은 다시 무제한 척살령을 발동했고 ‘리니지2’의 일반 사용자들은 바츠 해방의 꿈이 비참하게 좌절됐음을 확인해야 했다.

2005년 6월 현재 바츠 서버는 해방전쟁 이전의 참상으로 되돌아왔다. 사냥터에서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하루 저녁에 700명이 넘는 사용자가 지배혈맹에 의해 살해되고, 산발적인 소요가 일어나고, 그 결과 DK연합군이 사냥터의 오토 행위를 통해 만들어내는 바츠 서버의 아덴 가격은 폭등한다.

그러나 바츠 해방전쟁 스토리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미약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하는 게임이 바츠 해방전쟁 절정기의 그 숭고한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물건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숭고란 뭔가 고귀하고 성스럽고 영웅적인 것이 자신의 눈앞에 현전(現前)하고 있다는 충격의 체험이다. 그것은 묘사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천지창조의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리니지2’의 스토리는 날마다 놀랍고 비일상적이며 충격적인 순간, 묘사 불가능한 것이 일어나는 순간의 미학, 숭고의 미학에 의해 지배된다.

2005년 5월의 어느 날, 사용자들은 아직도 저항하고 있는 극소수 혈맹 가운데 한 파티가 용의 계곡에서 안타라스의 동굴로 출정하는 것을 본다. 시간은 이미 9시가 넘은 아침이다. 그 파티의 주인공들은 모두 밤을 새웠다. 수백명의 DK혈맹원과 벌인 간밤의 싸움에서 많은 혈맹원의 캐릭터가 더는 활동할 수 없는 봉인 상태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D급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수한 죽음으로 레벨이 30 이상 다운돼 무의미할 정도로 공격력이 낮은 무기를 들고, 옥쇄할 수밖에 없는 전쟁터로 묵묵히 떠나가는 것이다.

함께 파티 사냥을 하며 성장한 친구들은 대개 현실과 타협했다. 친구들은 저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친목혈’을 꾸려 군주가 되고 게임 안에서 편안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의 길을 택한 혈맹원들은 사냥터도 없이 풍찬노숙하며 사방에서 공격받고 악명을 뒤집어쓴다. 외로운 나머지 따뜻한 말 한마디에 쉽게 정을 주었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외로운 전사들이 묵묵히 전쟁터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리니지2’의 사용자만이 이해하고 감지할 수 있는 ‘숭고’다. 이러한 순간 ‘리니지2’의 스토리는 위엄을 갖춘 희생자들, 최후에 승리하는 패배자들, 타락한 현실에 대해 선(善)을 주장하는 무법자들의 형이상학적이고 영웅적인 진실을 전달한다.

숭고한 체험, 귀환하지 않은 영웅들

일찍이 조셉 켑벨은 많은 스토리에서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영웅이 평범한 인간 세상으로 귀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웅은 평범한 세계에서 ‘낯설고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 통과제의의 성격을 갖는 고통스런 체험을 한다. 그리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그 세계로부터 어떤 물질적, 정신적 전리품을 들고 다시 평범한 세계로 돌아와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해준다.

그러나 이 같은 ‘분리-통과제의-귀환(seperation-initiation-return)’의 구도가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신비하고 정복되지 않는 힘과 불멸하는 우주의 그림자를 맛본 영웅은 삶을 너무 많이 보고 너무 깊이 본다. 그래서 그는 안일무사한 생활인의 세계, 평범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바츠 해방전쟁의 스토리를 체험한 상당수 ‘리니지2’ 사용자야말로 귀환하지 않는 영웅이다. 그 전쟁은 현실 시간으로는 12개월에 불과하지만 30분이 하루인 ‘리니지2’의 가상현실에서는 무려 48년 동안 계속됐다. 서버를 초월해 모든 ‘리니지2’ 사용자가 숨죽이고 전쟁의 추이를 관찰했으며 그 고귀한 희생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고 그 허무한 결말은 사용자들 사이에 절망과 냉소주의를 유포했다.

온라인 게임 스토리만이 줄 수 있는 이 같은 서사적 감동과 사상적 깊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두번 다시 예전과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들은 ‘폐인’이라는 조롱을 웃어넘기며 온라인 게임이 만든 매트릭스로 날마다 들어간다. 이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융합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깊이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끝)

Posted by smoky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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