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이름의 권위에 기대어 과학을 희롱하는 자들. 과학을 돈과 권력의 실마리로 붙잡고 있는 자들이 있다.
살기 좋아졌다, 살기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을 갖고 세상이 어떻게 되고 있는 지를 판단하게 된다. 사회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온 몸으로 평가하게 된다. 당장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대출금의 이자는 높아지고, 보조금은 중단된다. 평가를 입 밖으로 꺼낼 힘조차 없어지게 되는 계층이 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위로 올라갈 수록 조금씩 줄어든다. 강도는 줄어들지만 목소리는 높아지겠다.
사회의 상위 계층들은 마이크가 있다. 부동산 값이 흔들리고, 세금이 조금 늘어나도 살기 힘들어졌다고 큰 소리를 낼 수 있다. 마이크를 돈으로 살 필요도 없이, 남의 앰프에 선을 꽂을 필요도 없이 조그만 마이크 하나라도 스스로 벼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배운 사람들이다.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훈련된 사람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만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줄 수도 있다. 사회의 가장 약자들, 그늘에만 서 있어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의 저렴한 마이크는 이럴 때 가장 빛이 난다. 소리가 세상에 쩌렁쩌렁 울리게 된다. 크기는 작은 마이크여도 세상엔 아직 음지에 서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도 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의 마이크는 꽤나 관리하기도, 다루기도 어렵다. 그들이 늘 그늘에 서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다수는 이미 양지의 아랫목에 가있기도 하고, 그래서 어두운 곳으로 팔이 안 닿은지 오래된 이들도 있다. 음지와 양지를 왔다갔다 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원래 그늘에 서 있던 사람과는 달리 꽉 짜여진 세상 속에서 마치 자율의지를 가진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가장 좋은 것은 어두운 곳에서 그 목소리가 스스로 울려퍼지게 하는 것이고, 다음은 마이크를 벼른 사람들을, 적어도 손에 들고 있는 그 마이크 만큼은 음지를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의지, 혹은 공부가 필요한 일일까? 아니면 결국 음지가 길어져야 하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몰가치와 동거한 욕망의 경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22308.html
한동안 주변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좀 들었던 시절
매번 가물가물한 연예인 이름이랑 얼굴 떠올리는 것도 힘들어 답변용으로 두어명 뽑아둔 적도 있었다.
누군가 나에대한 호기심에, 혹은 재미로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 등등의 대답으로 대꾸한다면 얼마나 민망해질까 싶어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수시로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더니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아 별 소용 없어졌다.
색깔도 준비했었다.
연예인과는 다르게 좋아하는 색깔을 고르는 건 좀 힘들었다.
흰색? 아, 너무 좋아. 검은색? 너무 멋져. 파란색? 너무 눈부셔. 빨간색? 너무 짜릿해. 노란색? 너무 귀여워. 초록색? 너무 편안해......
뭐 어쩌라는 얘기인지.
싸이가 한창 유행하고, 100문 100답 같은 걸로 자기를 소개하는 걸 돌리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질문들에 간혹 숨통이 조여 오기도 했었지만.
색깔은 원래 그 하나가 예쁜게 아니라 여러 색과 어울릴 때 빛을 내는 거라고,
그러니까 색깔을 하나든 여러개든 꼽아보세요 라고 묻는 것은
도레미파솔라시 중에 어떤 음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과 흡사한 거랄까.
저는 파샵 좋아해요. 그 음만 들으면 두근거려요. 좀 이상하잖아.
뭐,
오늘 지나가는 예쁜 차를 보곤 갖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 화두 하나에 곧바로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얼마? 성능은? 내 능력은? 알아볼까? 몇년이나 걸려야 살 수 있을까? 등등
거기서 바로 정지시키지 않았으면 난 얼마간의 시간을 그 질문에 답하는데 썼을것이다.
시작은 '차를 갖고 싶다'였지만 난 왜 그런 욕심을 갖게 됐는가가 궁금했다.
만들어진, 조작된 욕망 뭐 이런 걸 덧붙이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내 삶을 조향하기 위해선 나한테 던지는 질문들에 신중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거다.
일단 질문을 던지고나면 해답의 끄트머리라도 확인해야 시원해하는 성격이라
질문을 던지는 일부터가 조심스럽게 시작해야 한다.
무언가 관심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요즘 들어 그게 잘 안됐다.
뭔가 해보려고 노력했던 건 사실 곁가지 치기였다.
근본적인 욕구를 끌어갈 물길을 내는일, 질문을 던지는 일을 잊고선
거기서 파생된 지엽적인 일들을 다듬는 일만 건드리고 있었던거다.
아무리 가지치기를 잘해도 줄기가 옆으로 나기 시작하면 이미 끝난거니까.
산에 가는 거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데
글 다쓰고 나면 어느새 산에 가있다.
백두대간 다 탈 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