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독자에게]
‘녹색대학’ 개교를 바라보며

‘다양한 과목들 중에 옥석을 가려내 직접 짜는 커리큘럼’,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며 진행되는 수업시간’. 입학하기 전 품었던 대학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개입할 여지없이 획일화 되어있는 커리큘럼. 교수의 생각을 주입하는 방편으로 진행되는 겉치레 토론 수업. A부터 F까지 일방적이고 평면적으로 매겨지는 성적. 대학도 고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국 9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다’지만 여기에 3백만을 더하는 게 셈법에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전국에 ‘하나’의 학교만 있는 것과 다름없는 교육현실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학교인 대안학교가 속속 세워지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간디학교’가 최초의 대안학교를 표방하며 문을 연 이래 수십개의 대안학교가 생겨났습니다. 올해는 최초로 대안대학이 문을 열었습니다. 9년의 준비 끝에 40대 농사꾼, 대학 중퇴자, 수녀님 등 평범하지 않은 이력의 학생 1백50여명과 장회익 교수, 최창조 교수, 이정우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 50여명이 지리산 자락에 모여 ‘녹색대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배움과 실천의 일치’,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내세우며 하루 3시간 노동하기와 순수한 교환만을 목적으로하는 녹색화폐의 사용도 신선한 실험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녹색대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비단 새롭고 신기한 학교가 하나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대학’은 스스로가 표방하고 있듯이 ‘대안’대학입니다.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대안을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대안은 ‘대안’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하나의 정식 안으로 채택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초중등 과정의 대안학교는 이미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올해도 예닐곱개의 대안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친환경을 중시하는 학교, 인성과 적성교육을 중시하는 학교 등 다양한 ‘대안’이 만들어져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현상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안교육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어렵기만 합니다. 학부모의 직장문제나 돈 문제로 인해 대안교육은 꿈도 못 꾸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공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육은 공교육대로 무너져 내리는데 여기저기 ‘대안’만 쏟아지는 것 또한 ‘대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녹색대학’은 사회와의 의미있는 관계를 이런 관점에서 찾아내고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힘들게 세상에 나오게 된 ‘녹색대학’입니다. 이제 쑥쑥 자라 지리산 자락에서 걸어나오는, 그래서 삭막한 도시마저 녹색으로 바꾸어 내는 대학이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smoky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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