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봉사활동.

일상/수다 2009. 1. 12. 23:07



소위 말하는 봉사활동이란 걸 성인이 되어서는 가본 적이 없다. 여름과 겨울이면 지겨울정도로 갔던 농활/빈활은 '농촌 봉사활동'이 아니라, '농민학생 연대활동', '빈민학생 연대활동'이었기에 엄밀히 봉사활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봉사라는 말 자체에 어느정도 염증을 느끼기도 했다. '아름답고, 고귀하고, 헌신적인 봉사활동'이란 국가가 주로 사회적 약자를 통해 드러나는 시스템의 약한 부분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통해 채워내는 말이라 여겼고, 아니면 시혜의식 가득한 고귀한 분들의 취미활동(그래서 나 따위는 흔히 감정이 건너편 사람에 대입대곤 하기에 자존심 상하는)같은 것이라고도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치적으로 흔히 말하는 '봉사'는 거부한 채 시스템의 개선을 오로지 외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내가 당신과 동일한 사람이기에 당신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소"하는 정도의 빈약한 연대주의 정도만을 가졌을 뿐이다. 이런 문구를 머릿속에서 계속 읊어대도 실제 나보다 더 약하고, 힘 없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떤 동정어린 시선을 무의식중에 보내게 될까, 혹은 두려운, 또는 꺼리는 시선을 띄게 될까를 생각해본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쉽게 지키고 싶었고, 시험에 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쩌면 '봉사'란 말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고, 행동을 하기도 전에 정의부터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리고 지난 주말, 영은이(가명)를 만났다.

7살짜리 영은이는 내게 계속 달라붙었다. 처음 내가 말을 건넸을 땐 쳐다보지도 않더니 어느샌가 다가와서는 허리를 붙잡고 서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할 땐 내 양반다리의 품 속에 앉아있어야 했고, 일어서 있을 때엔 목마를 타고 있거나 가슴에 안겨 있어야 했다. 다른 꼬마들은 그냥 손잡고 서서 놀거나, 알아서 뛰어다니기만 해도 좋아 하는데, 얘는 대체 뭔지. 힘들어서 잠시 땅에 내려놓을라 치면 금새 입을 삐죽거리면서 칭얼거렸다. '내가 너 울리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어 그냥 다시 안아줬다. 사람들이 어떤 게임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영은이는 게임엔 관심도 없었고, 비행기 놀이가 하고 싶었다. 또, 손이 안닿아 보지 못했던 책장 높은 곳의 책을 꺼내보고 싶었던거다. 사회자가 실장님이었지만 영은이가 더 무서워 난 영은이를 데리고 강당 여기 저기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7살짜리 어린애가 무거워봤자지만,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한 나는 어느샌가 영은이의 귀에대고 "오늘 아침 밥 두그릇 먹고왔지?"라고 차마 꼬마 숙녀에게 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시작한 닭싸움에 올타쿠나 싶어 영은을 옆에 두고 가운데로 나왔다. 대충 하다 멋지게 쓰러져 누우면서 잠시 쉬고 끝내야겠다는 닭싸움 전략이 마련됐지만 '시작'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영은이가 응원을 시작했다. 게임에 집중도 안하던 녀석이 내가 나간다니 '이겨라'만 계속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네가 나를 짐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었구나. 닭싸움 전략은 무조건 승리로 급변경했고 나는 '악, 악' 소리를 내며 상대와 싸웠다. 상대 선생이 '너무 힘들어요 일단 건드리면 쓰러질게요'라고 내 귀에 속삭이자마자 나는 그를 쓰러뜨렸고, 폴짝폴짝 뛰고 있는 영은이를 트로피처럼 번쩍 들어올려줬다. 그나마 한 숨 돌리게 된 것은 함께 간식을 먹으며 그림 그리는 시간이 됐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바닥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간식으로 나온 귤을 하나 까먹고, 그림에 몰두한 영은이의 모습을 그려줬다. 뭔가 창의적이고 예쁜 그림만 그리고 있겠지 싶어 힐끔 도화지를 보니 검은 색연필로, 꽃인지 나비인지 모를 것들과 무수한 별무늬 그리고, 조그만 편지 한 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곤 자기는 간식으로 초코빵을 받고 싶었는데 소보루를 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울리면 오늘 미션은 끝이다 싶어 주위 사람들을 기웃거리며 초코빵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겨우 하나 구해 돌아오니 영은이는 양말을 벗고선 엄지발가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발톱끝이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7살밖에 안먹은 것이 그걸 뜯어내겠다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떼 주세요, 떼 주세요"하는 걸 내가 더 놀라 다시 끌어안고 사무실로 갔다. "생활관에 손톱깎이가 있으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라고 다른 봉사자 분이 영은이를 데리고 멀리 복도를 따라 생활관으로 들어가신다. 3분도 안지나 문이 열리더니 영은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뛰어왔다.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본새가 또 안아달라는 것이겠지?  다시 영은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안아서 목마를 태워주고, 비행기 놀이를 해 줄 어른이 없었을것이다. 그런 아빠도, 삼촌도 가져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은이의 발이 땅에 닿을 일이 없을 정도로 들고 다녀 땀이 쉴새없이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게 형제가 있어 조카가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했고, 난 적어도 영은이에겐 놀이기구 이상은 되고 있는 것일테니까. 

글쎄 이게 '봉사'일까?  분명 공식적으로는 문서에 적힌대로 '봉사활동'을 간 것이었지만, 나랑 손잡고 섰던 영은이를 동정하지도 않았고, 봉사하지도 않았다. 토요일 어느 오전 사는 게 약간 지루했던 아저씨 한 명과 자기랑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여자아이가 함께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을 뿐이고, 그 둘은(적어도 한 명은) 그 짧은 시간동안 힘을 얻고 돌아갔을 뿐이다. 사는 게 으레 그런 것처럼.

영화 한 편 보면 그만일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은이가 미적거리다 돌아서서 강당을 빠져나갈 때엔 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 쪽팔리게,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뭐 담번에 또 같이 놀면 되지.

모든 봉사활동이 이렇게 같이 '놀고', '웃는'것만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래도 '같이' 웃는 것이기도 한 것처럼, 봉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같이' 짐을 나누고, '같이' 우는 것이기도 하겠지. 그래, '같이'하는 것을 배우는 거였구나.....

늦깎이 봉사 입문자가 이제야 이마를 친다.

Posted by smoky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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