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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9 침묵하지 않겠다는.... (4)



어떤 더운 여름날 학교 앞 어느 커피숍에서 선배와 마주 앉았다. 선배는 거두절미하고 말을 시작했다.
"넌 형제관계가 어떻게 돼?"
"4대 독잔데요."
"어~정말? 부모님께서 4대독자 아들이 혁명가 됐다고 좋아하시겠네."
"네?"

내가 놀란 지점

1. 4대독자 혁명가 = 부모님이 좋아한다 ?
 이 무슨 발찍한 표현인가. "친환경에너지인 원자력발전", "국민 복지를 위한 세금 감축", "천민 민주주의", "평화적인 화염병시위"와 같은 표현과 동급이 아닌가.

2. 응? 혁명?
 아니 책에서나 보아온 이런 말들을 저렇게 스스럼없이 꺼내는... 그것도 내가 혁명가? ㅎㅎ......

선배의 사고가 독특했던 건지, 그냥 일종의 견강부회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혁명'이란 단어 하나로 인해 당시 내 머리의 rpm은 10배 정도 빨라졌었다. 그 때의 '혁명'은 요즘 TVcf에서 "XXX는 나에게 혁명가였다" 따위의 적당한 수식어로 전락해버린 그 단어가 아니었다. 발음부터가 단호함이 묻어있듯 세상을 근본부터 바꾸어버리겠단 그러한 결의 없이는 쉽게 입밖에 내뱉지 못할 단어였다.
선배의 말은 일종의 새해의 덕담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러니까 미리 단정지어버리는 어법. "부자돼라"대신 "부자됐네"라고 덕담하듯 선배는 "혁명가 돼라"대신 "혁명가 됐네"라고 말을 뱉은 셈이었다.
난 지금까지도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누군가를 보진 못했다. 다들 그 말의 무게와 그것에 따르는 책임을 잘 알기 때문이겠지. 삶에 있어서 정답은 없지만 내게 그 말을 해준 선배는 진보정당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선배가 내민 손을 제대로 잡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고민은 이어졌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걸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10년이 지난 오늘 내 고민은 결국 "침묵할 것인가, 발언할 것인가"였다. 조금씩 높아지는 온도를 깨닫지 못하고 솥에서 그대로 익어버리는 모양마냥 뒷걸음질 치는 민주주의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벽에 조계사 앞에서 일어난 백색테러는 50년대 정치 드라마에서나 봐온 정치깡패들의 그 모습아니었나. 사건을 무마하려는 경찰과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는 보수언론들... 불과 반년만에 우리나라는 종교분쟁이 일어나고 백색테러가 자행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이라고는 모니터에 뜬 뉴스를 보고 분개한 일, 친구와 수다를 떤 일이 다였다. 어느 집회에 갈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다녀와야할까를 생각한게 아니라 집회에 갈까말까를 고민했다. 어떻게 항의하고 어떻게 저항할까를 고민한게 아니라 의미없는 클릭질만 되풀이했다.

침묵하는 것 혹은 결과적으로 침묵과 다를바 없는 모습은 강자에게 동의한다는 그것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난 오늘 침묵한 셈이 되어버렸다. 같은 논리로 최근 한동안 이명박을 지지하고 만 꼴이다. 그냥 분노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면 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수백번의 혁명을 해온 혁명가가 됐을 것이다.

난 아니라고 이야기해야겠다. 10년이 지난 오늘 선배가 말했던 그 '혁명가'는 아니지만 한 명의 당당한 '시민'으로 발언권을 찾아야겠다.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에 '발언'해야겠다. 부족하지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ps. 노골적인 정치깡패의 회칼테러에 크게 다치신 세 분의 쾌유를 빕니다.

Posted by smoky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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