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신화가 단순히 눈물겨운 인간승리의 재활스토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 신화의 결정판은 1999년 10월 20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플레이오프 7차전이었다. 양대 리그로 치러진 그 해, 드림리그 2위 롯데는 매직리그 1위였지만 승률이 부족했던 삼성과 4선승제 플레이오프를 치렀고, 1승 3패까지 몰렸던 5차전에서 터진 호세의 역전 끝내기 3점 홈런과 6차전에서 박석진의 7이닝 퍼펙트로 회생해 최종전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0-2로 끌려가던 6회, 1점을 만회하는 홈런을 날리고도 관중석에서 날아든 물병에 급소를 맞은 호세는 흥분해서 관중석으로 방망이를 집어던졌고, 곧장 퇴장을 명령받았다.


뒤진 상황. 중심타자는 퇴장 당했고, 흥분한 관중석에서는 끊임없이 오물이 날아들었다. 암담한 순간. 그 때, 주장 박정태는 선수들에게 짐을 싸자고 했고, 선수들은 짐을 쌌다. 그 순간 김명성 감독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선수들의 경기거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뻔 했다. 감독의 간곡한 설득에 다시 주저앉아 맥없이 글러브를 꺼내 드는 선수들에게 박정태는 한 마디를 던졌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한다."


30분의 경기중단 뒤에 나선 마해영은 퇴장당한 호세와 이어지는 '백투백'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7회에는 비록 전날에 이어 무리하게 등판한 박석진이 똑같이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연속홈런을 내줘 재역전 당했지만, 이번에는 8회에 임수혁이 투런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10회말 만루 위기를 넘긴 그림 같은 호수비의 주인공 김민재가 연장 11회 초 때려낸 결승타와 11회말 주형광의 그림 같은 3연속 삼진 마무리까지.


비록 그 날, 박정태는 한 개의 홈런도 날리지 못했고, 역사적인 결승타나 호수비를 보여준 것도 없었다. 그러나 부산 팬들이 그 날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박정태다. 구슬을 꿰듯, 선수 하나하나의 가슴에 불을 붙여 롯데라는 하나의 불덩어리로 만들어낸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뛰었던 열 세 시즌동안, 통산 2할9푼6리의 타격. 한 때 최다였던 31경기 연속안타와 5번의 골든글로브, 98, 99년 2년 연속 올스타전 MVP. 훌륭한 성적이지만 '최고중의 최고'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그의 가치는 안타 몇 개와 홈런 몇 개가 아니라, 푸른 유니폼에 자긍심을 실어놓은 선수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이언츠라는 이름에서 가슴 떨림을 느끼게 해준 선수라는 점에 있다.


그가 뛰는 경기를 보고 난 다음에는, 항상 가라앉지 않는 흥분에 한참 넋을 놓아야 했던, 박정태. 한 번 떠올려 글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노곤해지게 하는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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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롯데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그들...

마해영, 호세, 전준호, 김민재... 롯데가 버린 이들이자 팬들은 버리지 않은 이들

그리고 임수혁

 
게시물댓글
오정록 : 롯데 팬들 매너 진짜 없다. 홈런 친 선수를 말야. (2007.06.24 23:08) 댓글버튼 삭제버튼
장용훈 : 도대체 뭘 본거냐.. 삼성 팬이다..--;; (2007.06.28 02:18) 댓글버튼 수정버튼 삭제버튼
오정록 : 어쩐지 이상했어. 나 취직했당 (2007.06.28 15:10) 댓글버튼 삭제버튼
  

 
Posted by smoky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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