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학원을 그만둔지 보름여가 되어간다. 학원에서 주는 80만원이라는 급여는 남들이 적다할진 몰라도 그 정도의 노동에 비하면 후한 대가라 여겨졌다. 그럼에도 학원을 관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시간 문제가 신경 쓰였다. 하루하고 반나절씩 이틀 정도가 일주일에 학원에 써야할 내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일요일에는 세벽까지 워크숍이 있어서 월요일 오전까지가 사실상 학원에 내야하는 시간이됐다. 그렇게 약 3일간 학원에 투자하고 나면 나에겐 일주일의 과반을 약간 넘기는 4일밖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짜임새 있게 썼는지 논란은 뒤로 미루고서라도 그런 현실이 차츰 목죄어 오는 듯했다. 내가 공부할 시간이 적어진다는 의미보다는 내가 자유로울수 있는 시간이 그것밖에 안된다는게 답답해져온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마치 어릴때 어느 동화집에서 읽은 우유팔러가는 소녀와 같은 모습이 되어가는게 두려워서였다. 우유를 팔러가는 소녀는 가는 도중에 상상의 나래를 편다. 우유를 팔아서 암탉을 사고, 그 암탉이 낳은 달걀을 팔아 돼지를 사고, 또 소를 사고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행복한 생각에 정신이 팔려 그만 이고가던 우유를 엎질러버리고 만것이다. 내가 받은 월급 80만원 가운데 생활비 40여만원을 제한 나머지는 고스란히 미래를 위해 투자될 돈이었다. 하지만 그 40만원은 앞으로의 수개월의 40만원과 합쳐져 400만원이 되었고 400만원은 수천만원이 되었다. 수천만원은 곧 내가 살지 모르는 집과 자동차가 되었고 곧 미래가 되었다. 내 손의 40만원이 주는 여유는 나의 미래를 집과 자동차로 바꿔놓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당연하다. 집도 자동차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꿈꾸던 미래는 언제나 더 큰 세상이었고, 내가 해나가는 일로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지 그런 물건들로 대체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새로운 꿈을 얻은 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꿈꿔왔던 꿈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문제였다. 겨우 40만원에 난 그렇게 흔들리게 되었고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당장 내가 배가 고프지 않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많이 멀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은 40만원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성숙해진 다음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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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댓글
김유진 : 음...이해된다.하지만 난 너만큼 착하지(?논란의여지가 있다.)못하다. (2004.04.23 18:59) 댓글버튼 삭제버튼
김유진 : 나도 카운트 하곤 하는데 계산이 안나와 더 짜증이 나더군... (2004.04.23 19:01) 댓글버튼 삭제버튼
신상헌 : 국문과 나오면 돈벌기 싫다는 말도 이렇게 아름다워지는구나... 나같으면 짱나서 때려쳤다고 하겠지 ㅜㅜ (2004.05.21 15:38) 댓글버튼 삭제버튼
Posted by smoky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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