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다'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09.02.03 태백산 눈꽃 산행 4
  2. 2009.01.25 박자 2
  3. 2009.01.12 첫 봉사활동. 4
  4. 2009.01.02 겨울하늘 2
  5. 2008.12.31 1999년 세기말의 과제물 3


태백산 겨울 풍광이 그렇게 좋다길래 간다는 사람들을 홧김에 따라나섰다.
겨울 가뭄도 심했고, 최근 며칠 날씨도 따뜻해 일출이나 제대로 보면 다행이겠다 싶었는데
산행을 시작한 새벽부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스름하게 동이트면서부터 태백산 설경이 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일출에 대한 욕심이
말끔하게 가실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날도 그렇게 춥지 않아 첫 야간 산행이었음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기회가 닿으면 아는 사람을 데려가도 좋으련만.
혼자 보기에 아까운 풍경이라,
그리고 친구 기운내라는 뜻에서
같이간 분이 찍은 사진을 얻어 몇 장 올려본다.




 

 

 





 





 

 



 

 




그리고 기념 사진 중에서 (내가) 그나마 잘나온 사진도... 쿨럭 -_-;;;



Posted by smokyface
,

박자

일상/수다 2009. 1. 25. 22:25


1.

하루나 이틀정도, 혹은 그 보다 긴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

자기도 몰랐던 눈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주어지는 자극에 어긋난 시간에 반응하게 될 때.

그리고, 자극의 강도가 크면 클 수록 그 시간차는 더 미묘하게 엇갈릴 때.

이런 상황조차도 혼란스러워진다.



2.

생전 겪어보지 못했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너무나 낯선 자극이 주어질 경우

불쑥 느껴지는 감정이 내 진실한 감정일까.

어떤 경우엔 내가 슬퍼해야 하는지, 화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웃으면 되는 것인지 조차 헷갈릴 경우가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의 감정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을 때

그러한 혼란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3.

다시 몇 번을 곱씹어 보고도 괜찮았는데,

또 몇 번을 되짚어 생각해보니 슬퍼졌다.

내가 생각해서 슬퍼진 것일까, 원래 그런 일이었던 것일까.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환자같기도 하고

집채만한 파도의 끄트머리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 같기도 하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내가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사고하는데 훨씬 익숙하단 걸 깨달았는데...

이미지로 사고했을 때와 언어로 사고했을 때의 감정의 결과가 이렇게 다르다면

다시 혼란스러워 진다.





4.

뭔가, 바보같다.





Posted by smokyface
,

첫 봉사활동.

일상/수다 2009. 1. 12. 23:07



소위 말하는 봉사활동이란 걸 성인이 되어서는 가본 적이 없다. 여름과 겨울이면 지겨울정도로 갔던 농활/빈활은 '농촌 봉사활동'이 아니라, '농민학생 연대활동', '빈민학생 연대활동'이었기에 엄밀히 봉사활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봉사라는 말 자체에 어느정도 염증을 느끼기도 했다. '아름답고, 고귀하고, 헌신적인 봉사활동'이란 국가가 주로 사회적 약자를 통해 드러나는 시스템의 약한 부분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통해 채워내는 말이라 여겼고, 아니면 시혜의식 가득한 고귀한 분들의 취미활동(그래서 나 따위는 흔히 감정이 건너편 사람에 대입대곤 하기에 자존심 상하는)같은 것이라고도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치적으로 흔히 말하는 '봉사'는 거부한 채 시스템의 개선을 오로지 외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내가 당신과 동일한 사람이기에 당신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소"하는 정도의 빈약한 연대주의 정도만을 가졌을 뿐이다. 이런 문구를 머릿속에서 계속 읊어대도 실제 나보다 더 약하고, 힘 없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떤 동정어린 시선을 무의식중에 보내게 될까, 혹은 두려운, 또는 꺼리는 시선을 띄게 될까를 생각해본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쉽게 지키고 싶었고, 시험에 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쩌면 '봉사'란 말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고, 행동을 하기도 전에 정의부터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리고 지난 주말, 영은이(가명)를 만났다.

7살짜리 영은이는 내게 계속 달라붙었다. 처음 내가 말을 건넸을 땐 쳐다보지도 않더니 어느샌가 다가와서는 허리를 붙잡고 서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할 땐 내 양반다리의 품 속에 앉아있어야 했고, 일어서 있을 때엔 목마를 타고 있거나 가슴에 안겨 있어야 했다. 다른 꼬마들은 그냥 손잡고 서서 놀거나, 알아서 뛰어다니기만 해도 좋아 하는데, 얘는 대체 뭔지. 힘들어서 잠시 땅에 내려놓을라 치면 금새 입을 삐죽거리면서 칭얼거렸다. '내가 너 울리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어 그냥 다시 안아줬다. 사람들이 어떤 게임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영은이는 게임엔 관심도 없었고, 비행기 놀이가 하고 싶었다. 또, 손이 안닿아 보지 못했던 책장 높은 곳의 책을 꺼내보고 싶었던거다. 사회자가 실장님이었지만 영은이가 더 무서워 난 영은이를 데리고 강당 여기 저기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7살짜리 어린애가 무거워봤자지만,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한 나는 어느샌가 영은이의 귀에대고 "오늘 아침 밥 두그릇 먹고왔지?"라고 차마 꼬마 숙녀에게 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시작한 닭싸움에 올타쿠나 싶어 영은을 옆에 두고 가운데로 나왔다. 대충 하다 멋지게 쓰러져 누우면서 잠시 쉬고 끝내야겠다는 닭싸움 전략이 마련됐지만 '시작'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영은이가 응원을 시작했다. 게임에 집중도 안하던 녀석이 내가 나간다니 '이겨라'만 계속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네가 나를 짐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었구나. 닭싸움 전략은 무조건 승리로 급변경했고 나는 '악, 악' 소리를 내며 상대와 싸웠다. 상대 선생이 '너무 힘들어요 일단 건드리면 쓰러질게요'라고 내 귀에 속삭이자마자 나는 그를 쓰러뜨렸고, 폴짝폴짝 뛰고 있는 영은이를 트로피처럼 번쩍 들어올려줬다. 그나마 한 숨 돌리게 된 것은 함께 간식을 먹으며 그림 그리는 시간이 됐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바닥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간식으로 나온 귤을 하나 까먹고, 그림에 몰두한 영은이의 모습을 그려줬다. 뭔가 창의적이고 예쁜 그림만 그리고 있겠지 싶어 힐끔 도화지를 보니 검은 색연필로, 꽃인지 나비인지 모를 것들과 무수한 별무늬 그리고, 조그만 편지 한 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곤 자기는 간식으로 초코빵을 받고 싶었는데 소보루를 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울리면 오늘 미션은 끝이다 싶어 주위 사람들을 기웃거리며 초코빵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겨우 하나 구해 돌아오니 영은이는 양말을 벗고선 엄지발가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발톱끝이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7살밖에 안먹은 것이 그걸 뜯어내겠다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떼 주세요, 떼 주세요"하는 걸 내가 더 놀라 다시 끌어안고 사무실로 갔다. "생활관에 손톱깎이가 있으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라고 다른 봉사자 분이 영은이를 데리고 멀리 복도를 따라 생활관으로 들어가신다. 3분도 안지나 문이 열리더니 영은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뛰어왔다.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본새가 또 안아달라는 것이겠지?  다시 영은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안아서 목마를 태워주고, 비행기 놀이를 해 줄 어른이 없었을것이다. 그런 아빠도, 삼촌도 가져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은이의 발이 땅에 닿을 일이 없을 정도로 들고 다녀 땀이 쉴새없이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게 형제가 있어 조카가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했고, 난 적어도 영은이에겐 놀이기구 이상은 되고 있는 것일테니까. 

글쎄 이게 '봉사'일까?  분명 공식적으로는 문서에 적힌대로 '봉사활동'을 간 것이었지만, 나랑 손잡고 섰던 영은이를 동정하지도 않았고, 봉사하지도 않았다. 토요일 어느 오전 사는 게 약간 지루했던 아저씨 한 명과 자기랑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여자아이가 함께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을 뿐이고, 그 둘은(적어도 한 명은) 그 짧은 시간동안 힘을 얻고 돌아갔을 뿐이다. 사는 게 으레 그런 것처럼.

영화 한 편 보면 그만일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은이가 미적거리다 돌아서서 강당을 빠져나갈 때엔 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 쪽팔리게,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뭐 담번에 또 같이 놀면 되지.

모든 봉사활동이 이렇게 같이 '놀고', '웃는'것만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래도 '같이' 웃는 것이기도 한 것처럼, 봉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같이' 짐을 나누고, '같이' 우는 것이기도 하겠지. 그래, '같이'하는 것을 배우는 거였구나.....

늦깎이 봉사 입문자가 이제야 이마를 친다.

Posted by smokyface
,

겨울하늘

일상/수다 2009. 1. 2. 10:53





아주 흐린 날의 기억 (이성복)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가을하늘만 있는게 아니더라.
 
웅크리고 다니느라 바닥만 보기바쁜 겨울,

잠시만 고개를 들어보면 차갑고 투명하게 얼어있는 하늘이 있다.

우연히 다시 찾은 싯구와 새롭게 다가온 겨울하늘 덕분에

여기저기서 많이 본 뻔한 컨셉이나마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붓을 잡으니 제 멋대로의 하늘이 나왔다.



Posted by smokyface
,



구글링 검색어는 '국문과'와 '장용훈'.
연합뉴스의 '장용훈'기자와 80년대 분신한 노동자 '장용훈'을 비껴서
인터넷에 뭔가 흔적이 남아있긴하다.
가장 강렬한 것은 대략 10년 전 들었던 '영상인류학' 수업의 최종 보고서.
김군, 신양, 그리고 기억 안나는(게 당연한) 조모군이 같은 조였고 사실상 과제물과 보고서는 신양 혼자서 다 만들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자막넣을 때 왔다갔다한것 뿐.
김군과 내가 학생회 선거한다고 수업따위(?) 완전히 무시하고, 도움도 전혀 못 줬는데,
아무런 불평없이 알아서 이름 넣어준 신양이 감사할 따름.

그나저나 보고서, 약간은 웃기지만 참 잘 썼네. (살 붙이는 재주는 예술의 경지)
정말 말처럼, 학생회 선거하는 모습을 그대로 찍었어도 재밌었을듯.

..................................

1999년 2학기 영상인류학
제 2조 최종 보고서


제목: 1999, 나레이터 모델의 하루


교 과 목 : 영상 인류학
담당 교수: 이문웅 교수님
제 출 자 : 제 2조
국문과 97101-005 김유진
국문과 97101-020 신우영
국문과 97101-030 장용훈
인류학과 98206-026 조우준


제 2조 - 1999, 나레이터 모델의 하루


1. 작품 내용
우리가 선택한 대상은 나레이터 모델이다. 나레이터 모델의 하루 업무 시간을 돌아보며
그들의 직업에 관한 견해와 만족도를 물어보고 일상의 흐름을 들어보는 것이다.
2000년대를 눈앞에 눈 시점에서 나레이터 모델은 학력과 개인의 능력과는 별로 상관없이
개인의 활동성과 외적인 외모 조건을 바탕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치 연예인 같은
인기 직종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대 입구 역에서 이동 전화를 판매하는 나레이터 모델 두 명을 인터뷰하고, 그
들의 업무 활동과 고객이 없을 때의 정황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인터뷰를 통해서 확인하는 자료는 '나레이터 모델'이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
성과 그 직업에 대한 그들의 주관적인 견해, 실제 활동에서 드러나는 직업의 구체적 환경이
나 힘든 점 등을 물어 직업에 관한 의식과 실제 직업 활동 안에서의 장단점의 일치 정도를
확인한다.
구체적으로 확인된 자료들을 살펴보면, 우선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특정
한 능력에 따른 자격 조건보다는 외모에 따르는 자격이 우선하였고, 본인들은 스스로 그러
한 외모 우선의 직업 특성에 대해 전문적 직업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러나 프로 의식을 가져야 하는 전문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판매'와 '미소'라는 한정된 활동으
로 이루어져 있었고 실제로 고객이 없을 때의 여유나 고객 접객 태도에서의 약간의 무성의
함도 영상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본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직업의 매력과 동시에 비정규적이고 신체적 노동을 수
반하는 형태의 업무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아님을 인터뷰 응답을 통해 화면에 담았다.

2. 제작 개요
(1) 촬영 분량 : 85분
(2) 촬영 기간 : 1999년 12월 3∼4일
(3) 제작 비용 : 8mm 무비 카메라 테이프 2개 12,000원
편집 초안용 VHS 테이프 2개 4,000원
최종 편집용 VHS 테이프 2개 6,000원
합계 - 22,000원
(4) 제작 기자재 : LG 8mm movie camera 1대
소니 8mm movie camera 1대
삼각대 1대
유선 마이크
Victor 편집기
자막기 (인류학과 기자재실)
비디오
(5) 작품 시간 : 13분 8초

3. 제작 배경
이번 학기의 영상 과제의 주제는 1999년의 한국의 세기말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
적인 분야를 선정하여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우리가 선택한
부분은 나레이터 모델이라는 직업의 세계에서 드러나는 인식과 상황의 불균형이었다.
원래 우리 조가 처음 접근할 대상으로 기획한 분야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세기말,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1999년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모순된 느낌으
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기술 문명의 진보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하는 희망적인 미래관과 일상의 삶 속에서
그렇게 화려하지도 비약적이지도 않은, 1998년에서 1999년으로의 전환과 같은 1999년에서의
2000년으로의 담담한 수용의 의미였다.
TV나 광고 그리고 여러 가지 축제들에서 보여지는 21세기의 이미지는 긍정적이고 황홀
한 진보의 개념으로 다가온다. 모든 상품들이 자본주의 안의 기술 혁신으로 화려하게 포장
되어 부각된다. 이러한 조장들은 1999년에서 2000년으로의 전환이 단순한 물리적 개념의 1
의 더함이 아니라 비약적이고 발전적인 파격적인 전환을 상징하고 있다.
특히 이동 통신 기구의 홍보 판매나 인터넷, PC 등의 대리점에서 드러나는 과장된 광고
와 상행위에 대한 기록을 통해 이러한 낙관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의 삶의 현장 속에서 미래는 그렇게 비약적인 발전으로 희망
적이지도 그렇게 급격하게 몰락할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도 아닌, 그런 1999년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업과 언론에서 조장되고 있는 21세기에 대한 맹목적인 낙관 속
에서 그저 묵묵하게 살아가는 일반 서민들을 담담하게 기록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그 안
에서 새로운 21세기에 대한 시각들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포장하지 않는 시
선으로 우리의 1999년의 삶을 그려보기로 했다.
거기에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대학의 현실을 기록하여 다양한 목소리들이 혼재되어
있는 대학의 선거와 대학인의 삶 등을 연결 고리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모임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설정되었던 촬영 방향이 선생님의 코멘트와 다
른 팀들의 진행 상황을 듣고 우리가 방향 설정을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느
낌이 들었다. 구성이 세분화되어 영상 인류학적인 민족지성을 10분이라는 분량으로 드러내
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하나의 대상이 보여주는 민족지성을 오히려 작위적인 의도에
의해서 편집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통해 이제까지의 진행이 민족지
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주제 의식은 충분히 살리되, 10분의 영상 안에서 대상의 특
성을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의견을 작품 컨셉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논
의 끝에 정한 것이 바로 '나레이터 모델의 세계'이다.
나레이터 모델은 우선 21세기 가장 유망 산업인 통신 기기의 판매를 담당하는 사람이며
거기다 단순한 판매원으로서가 아닌,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특수한 직업의 형
태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얽매이기 싫어하는 신세대적 감각에 자기 PR의 형태로 물건을
홍보하고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특성 등의 매력으로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는 직업이다. 우
리는 여기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허위적인 의식이 제공하는 근거 없는 삶의 낙관을 발견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매력 속에서 실재로 나레이터 모델들이 겪는 생각들은 어떤 것인지, 자신
의 직업에 대한 희망 정도는 어떠한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 얼마나 희망적인지를 확인하기
로 했다.
우연성의 결과를 보다 기대하며 방향성을 가진 질문은 가능한 배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담아 민족지성을 추출해보기로 작품을 기획하였다.
즉, 1999년의 인기 있는 하나의 직업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모습과 실제 삶의 진
실의 조화도를 측정해 보기로 한 것이다.
4. Staff 구성 : 기획 - 신우영
촬영 - 장용훈, 김유진
진행 - 신우영
스캐닝 - 조우준
음향 - 장용훈
기록 - 김유진
편집 - 김유진, 장용훈, 신우영
연출 - 조우준
인터뷰 - 신우영
자막 - 김유진

5. 제작 일지
1차 모임 (10월 22일 금요일) - 주제 선정
국문과 김유진, 신우영, 장용훈과 인류학과 조우준이 한 조가 되기로 했다. 국문과 세 사
람은 같은 과이기 때문에 한 조가 되었고 조우준은 신우영과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같은 조
를 하기로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한 조를 이루고 나서 우리가 찍게 될 영상물의 기본 방향과 주제를 설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김유진과 장용훈이 수업에 참여도가
낮아 영상인류학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작품의 진행 방향과
주제를 토론하기에 앞서 영상인류학의 특성과 민족지성에 대한 논의를 먼저 진행하기로 했
다.
일단 영상 인류학적 특성을 보여주는 민족지 영화를 보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영상 인
류학적 작품이 항상 단순한 사실의 기록만은 아니라는 논의를 통해 우리는 촬영에 있어서는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구체적인 자료들을 구하되, 그 진행 과정에 있어서는 우리의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는 교수님께서 선정해주신 세기말 1999년의 한국의 모습으로 주제 분야를 선정하기
위하여 세기말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의미를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기말이 희망과 암담함, 그리고 소시민적인 담담함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혼란의 시기임을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막연한 혼재이기 보다는 뚜렷한 대비일
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되었다. 즉, 기술 문명과 종교적 이념 안에서의 요란스러움과는 달리
일상 생활은 차분하고 평범하게 진행되는데 오히려 이러한 간섭 현상으로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주제 의식을 희망과 암울함의 요란스러움과 일상 생활에서의 서민
적 담담함의 삶을 대비시켜 기록하기로 하였다.

2차 모임 (11월 6일 토요일) - 구체적 작품 구상과 대상 설정
11월 6일, 오늘까지 구체적인 작품 컨셉과 촬영 대상을 적어서 제출하라고 하였지만 모일
시간이 없어서 오후 늦게 되어서야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구체적인 촬영 대상을 선정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1차 모임에서의 결과를 약간 수정하였
다. 두 가지 컨셉으로 나누어진 대상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립되어 그것을 연결할 만한 고리
를 찾지 못했다. 이 경우 작품이 두 가지 내용으로 매끄럽지 않게 분할될 우려가 있을 것
같아 두 가지를 연결할 수 있는 장소를 집어넣기로 했다. 그래서 1차적으로 기술 문명의 화
려함과 맹목적인 낙관의 모습을 명동이나 신촌 등의 상거리에서 찍고 21세기에 대한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대학의 공간과 대학인의 목소리를 담은 후에 일상 시민의 삶을 찍기로 하였
다.
그리고 사이사이 실험적으로 스틸 사진이나 슬라이드 영상을 집어넣었으면 좋겠다는 의견
도 수용하기로 하였다.

3차 모임 (11월 18일 목요일) - 주제 변경, 진행 방향 토의
11월 17일 각 조의 진행 사항을 보고하고 약간의 코멘트를 듣는 수업 시간에서 우리는 우
리가 기획한 작품의 난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다음 날 조속히 모임을 가진 우리는 주제의
진행 방향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먼저 '비교 다큐'를 찍겠다던 우리의 의욕은 작품의 민족지성을 훼손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수였다. 10분짜리 분량의 민족지적 작품에서 대상을 두 개로 분할한다는 것은 시선의 분
할과 자료의 부족, 기획자의 의도에 따른 작위적 작품 편집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른다
는 지적을 염두에 두기로 하였다.
민족지적 영화에서는 하나의 대상에 대한 침착한 접근이 필요하며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
서 얻어지는 우연적 요소가 자료의 가치를 더해주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가 요구하는 내용들
도 미리 설정해놓고 그것에 맞추어 자잘한 조가들을 촬영, 조각 맞추기를 하려고 했던 것으
로 논의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까지의 의도적인 분할을 버리고 하나의 대상을 선정하여 지속적인 관
찰을 하기로 진행 방향을 수정하였다. 대신 우리가 기획했던 주제는 그대로 가져가고 그것
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잇는 대상으로 나레이터 모델을 선정하였다.
이동 통신의 홍보 마스크로 활동하고 있는 나레이터 모델을 직접 일상 시민의 삶의 모습
까지를 추출해볼 수 있는 대상으로 선정하여 직업적 관심과 실제의 삶을 조망해보기로 한
것이다.
우선 다음 주에 거리의 나레이터 모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주제 의식의
접근 가능성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현지 조사 (11월 27일 토요일) - 인터뷰, 자료 조사 및 방향 설정
나레이터 모델을 직접 만나 제반 상황에 대한 자료 조사가 들어갔다. 서울대 입구의 한
이동 통신 대리점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 나레이터 모델에게 우선 나레이터 모델이라는 것
이 어떠한 직업인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의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나레이터 모델은 나레이션(구두 설명)을 하는 모델이라는 개념으로 외적인 조건으로 모델
의 이미지를 띄고 있으면서 상품에 대한 지식을 친근하게 고객에게 설명해 주거나 행사의
진행, 홍보를 맞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나 하기보다는 연예인과 유사하게 매니저에게 소속(완전 고용은 아님)되어 매
니저가 적당한 일을 연결시켜주면 행사 기간동안 계약되어 업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일은 주로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거리 혹은 행사장에 서서 물건들을 홍보하고 설명하여
판매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나레이터 모델에 대한 외부적인 자료를 통해 우리가 접근하고자 하는 주제
와 관련하여 단순히 모델로서의 의미가 아닌 오히려 판매원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모델'이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상황이 중요한 해석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후 작품의 방향
을 나레이터 모델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그것에 대한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 상태, 실제적
상황의 만족도 등을 확인해야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현지 조사 (12월 1일 수요일) - 자료 수집
과 후배의 소개로 나레이터 모델의 매니저로 일하고 계시는 분을 직접 만날 기회를 가졌
다. 촬영 장비는 가지고 갔으나 촬영을 거부하셔서 영상에는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
나 그 분을 통해 듣게 된 자료를 나레이터 모델 촬영 시에 적절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매니저 분의 말씀으로는 고학력 소지자가 아닌 여성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직업 중의
하나로서 그것이 자신의 외적 조건의 결과물로서 성취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다소 많으
며, 매니저라는 연결책을 통해 업체와 연결해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다는 이유로 요즘 연예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현상과 같이 자신들을 연예인, 전문 모
델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보면 물리적인 노동의 강도가 높고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판매원 정
도의 수준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국제적인 엑스포나 큰 규모의 행사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짓기나 교육이 요구되지 않으며, 다만 하루 종일 서서 고객에게 웃음을 주며 판매 가능하다
면 만족되는 직업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료들이 나레이터 모델의 자기 직업 인식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촬
영 시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기로 했다.

촬영 1 (12월 3일 금요일) -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첫 번째 촬영은 롯데 백화점 복도에 있는 다양한 나레이터 모델들을 화면에 담는 작업으
로 이루어졌다. 원래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나레이터 모델이 있다면 본격적
인 촬영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백화점 복도인 관계로 대부분 마이크를 부착한 상태여서 중
간에 인터뷰하기도 곤란하였고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주의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현장 그대로를 담기에는 어려운 장소였다. 그래서 작품의 오프닝 부분에서 다양한 형태의
나레이터 모델들의 사례들을 잠깐 보여주는 것도 괜찮을 듯하여 인터뷰는 하지 않고 대상들
의 활동들만을 간단하게 화면에 담고 돌아왔다.

촬영 2 (12월 4일 토요일) - 서울대 입구 역에서
토요일 오후 1시에 전 날 물색해 둔 서울대 입구 역의 나레이터 모델들을 찾아갔다. 그러
나 오후 1시경에는 남자만이 혼자 있었고 오후 2시쯤이 되어서야 진짜 나레이터 모델들이
두 명 등장했다. 그러나 진행 미숙으로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의 공백기간이나 등장을 카메
라에 담지 못하고 이후의 상황에서 자유로운 공백 시간, 손님 접객 시간 등을 나누어서 몇
차례 카메라에 담고 오후 5시쯤에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인터뷰 내용은 비교적 충실하게 소화해냈으나 개방된 공간에서의 촬영이라 원거리 촬영은
소음과 마이크 거리의 한계로 음향 효과가 그리 좋지 못했을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정보 전달을 위해 비교적 타이트하게 잡았다.
오후 6시 정리하는 상황과 촬영의 마무리 진행 상황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으나 카메라
두 대 모두 충전지가 다 닳음에 화면에 담지 못한 것도 아쉬운 것 중의 하나였다.

스캐닝 및 편집 논의 (12월 10일 금요일)
편집을 하기에 앞서 촬영된 화면들을 우선 스캐닝해 보았다. 카메라와 비디오 한 대를 이
용해서 이루어졌는데 주로 음향의 문제가 많이 지적되었다. 그리고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의
간격이 너무 짧아 편집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편집은 일단 인류학과 편집기나 사회대 다른 학과의 편집기를 알아보는 것으로 하고 편집
방향을 논의했다.
작품의 분할은 주로 다양한 나레이터 모델을 찍은 화면, 주 대상들의 인터뷰, 대상의 접객
활동, 대상들의 업무 공백 시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구성을 4분할하기보다는 첫 번째
내용을 프롤로그로 돌린 후 제목을 넣고, 나머지 주 대상의 세 가지 구성은 분리할 경우 지
루하고 음향의 질이 안 좋은 것이 너무 눈에 띄어서 적당히 시간의 흐름상에 따라 배분하고
세 가지를 섞어서 구성하기로 했다.

1차 편집 (12월 13일 월요일)
인류학과 편집기가 고쳐진 관계로 편집은 인류학과 기자재실에서 이루어졌다.
역시 편집할 때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인터뷰의 연결 과정에서 처음 부분의 공간이 짧아
서 첫 대답이 자꾸 씹히는 문제였다. 더구나 자막으로 질문을 대신할 때, 장면과 인터뷰 내
용의 전환보다 자막의 질문이 더 늦게 보일 수 있다는 문제점이 크게 대두되었다. 이는 촬
영 전에 미리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선 마이크의 길이가 짧고 터진 공간에서의 사람들의 이동에 따라 멀리서 잡은
씬의 경우 음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지적되었다.
마지막으로 처음 시작과 끝 부분에 fade-in과 fade-out을 다시 집어넣는 과정에서 중간에
빈 공간이 생김으로서 뒷부분을 그대로 다시 입혀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fade-in과
fade-out이 녹화 당시에 직접 들어가야 함을 미리 알지 못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
다. 그 결과 화질이 두 번 옮겨지고 한 번 덧입혀져서 매우 안 좋아졌다.

2차 편집 (12월 14일 화요일)
fade-in과 fade-out의 기술상의 실수로 나빠진 화질 때문에 다시 편집을 했다. 새 테이프
에 다시 첫 번째 복사본을 옮기며 바로 fade-in, out 처리를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자막을 넣는 과정에서 재본을 해야 했고 결국 제 3 복사본이 완성본이 되었다.

시사회 (12월 15일 수요일)
시사회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끔찍한 경험이었다. 어제 하루 종일 매달려
서 완성해놓은 테잎이 화면이 떨리는 상태로 맛이 간 것이다. 더구나 나(신우영)을 제외한
다른 조원들이 하나도 오지를 않아서 혼자 모든 창피함과 허무함을 느껴야만 했다.
어쨌든 선생님이 지적해주신 몇 가지 지적 사항에 따라 금요일 오후에 다시 편집을 하기
로 했다. 음질의 열악함과 지나친 클로즈-업은 촬영 당시부터 발생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
이 넘어가기로 하고 떨리는 화면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편집을 하고 제목의 길이를 길게 하
고 장소의 표시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지적에 따라 불필요한 부분도 다시 점검해
서 빼기로 했다.

6. 작품 분석
작품 의도
이 작품의 의도는 현재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는 여러 가지 다변화된 직업들이 항상 긍정
적인 가치를 갖느냐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2000년대의 도래라는 새로
운 시기의 전환점을 눈앞에 두고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포장되어 착각을 주어지고 있지는 않
은지에 대한 물음이다.
물론 우리들 자신과는 관계가 먼 직업일 수도 있고, 또 영화 안의 대상들과 일치하게 생
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직업
을 선택한 사람들, 그 직업에 현혹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현실의 균열점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더구나 21세기가 영상 미디어 이미지의 세계로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미디어가
만들어낸 '모델'이라는 신비적 영역 안에서 갇혀있을 때 놓칠 수 있는 현실들을 지적하고 싶
었다.

내용 분석
1999년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유망한 직종으로 떠오르는 통신 회사 직종과 연예인 등과 같
은 모델 직종의 결합으로 여겨지는 이동 통신 회사의 나레이터 모델들은 본인 스스로도 프
로 의식을 가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정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롭게 일할 수 있는 것,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외모와 언변 등을 동원하여 행사를 진행
하는 것 등을 가장 큰 매력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인터뷰의 진행에 있어서 불규칙적인 일 안에서의 소비 불균형, 모델으로서
의 매력보다는 판매 세일즈맨으로서의 1:1 접객의 어려움, 작업 환경의 어려움(신체적 고통)
또한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리고 프로 의식의 강조와는 다르게 손님이 없는 시간에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네끼리 어울려서 놀고 있거나 손님이 다가왔을 때에도 무관심하거나 자기 일을 하고 있
는 상황도 자주 드러났다.
결국 21세기 자기 홍보 시대를 눈앞에 두고 개인의 끼나 외모를 수단으로 내세워 선전하
는 모델로서의 매력으로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는 직업의 특성과 그 안에서 화려함 뒤에 감
춰진 나름의 고통이 묻어있는 직업의 이중성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인식의 만족도와 실제
일에서 제공받는 만족감이 일정정도 불일치하고 있음이 인터뷰 응답으로 드러난다.

팀별 자체 평가
① 화 질 : fade-in과 fade-out의 시도와 자막 편집의 과정에서 한 번씩 더 추가로 카피되
는 작업을 거쳐서 화질의 상태가 좋지 않아졌다. 색채의 선명도가 분해되어 어둡게 처리
되는 것이 단점이다.
② 음 향 : 촬영 자체에서의 소음의 개입으로 먼 거리의 촬영시 음향의 상태가 안 좋다.
다행이 먼 거리의 장면을 될 수 있는 대로 줄여서 음향의 불쾌감을 줄이고자 하였다
③ 필름의 구성 : 전체적으로 인터뷰 장면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
다. 원래 기획 의도는 나레이터의 하루 일상을 모두 담아 개인적인 영역까지 들춰내
려고 하였으나 작품 안에서 직업에 관한 인식과 만족도에 대한 탐구를 주로 드러내려다
보니까 매끄러운 연결이 되지 않아 생략했다. 대신 직업 자체에 대한 객관적 견해를 바탕
으로 외부적 상황에 대한 인식과 나레이터 모델의 의식에 대한 자체 평가를 드러내려고
했으나 구체적인 활동 안에서는 특별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레
이터 모델 개개인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인터뷰라는 방식이 너무 많
이 사용되지 않았나 하는 평가이다.
④ 자 막 : 전체적으로 촬영 당시 인터뷰 질문의 삭제를 염두에 두지 않아서 질문 이후
바로 응답이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을 질문을 생략하고 대신 자막 처리하는데 있어서 응답
의 가장 앞부분이 약간씩 잘려나갔으며, 자막이 화면의 등장과 응답보다 약간 늦어서 이
해하는데 불편할 수 있다는 문제가 나왔다. 그리고 fade out-in 처리하는데 있어서 제목의
길이가 약간 잘려나갔다.
⑤ 불필요한 필름 컷 : 연속적인 행위를 그대로 재현하는데 있어서 불필요한 장면이 약간씩
눈에 띈다.
Posted by smokyface
,